[박인희]사랑의 추억

프랑스의 미셀 뽈라레프가 부른 샹송인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는 1980년대에 광주 오월가로 번안되어 이 나라의 민주화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불후의 명작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원곡의 내용은 그 옛날 할머니가 그처럼 정성들여 가꿨던 아름다운 정원이 도시계획으로 불도저에 밀려 할머니에 대한 추억마저 함께 사라졌음을 안타까워한다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제목이 '어느 할머니의 죽음'이라 번역되어 소개되던 이 노래는 샹송 특유의 뛰어난 서정성 때문에 당시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오월의 상흔을 '오월의 노래'와는 또 다른 의미로 흔들어 놓곤 했습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이 샹송은 금지곡으로 묶이기도 했었죠.

'오월가'를 들으면 원곡에는 없는 비장함이 느껴지곤 합니다.
특히, 학살의 리얼리티를 간명하지만 강렬하게 묘사한 가사는 감히(?) 쉽게 따라 부르기 어려운 엄숙함과 경건함을 주곤 했지요. 그러나, 우리가 아는 거센 행진곡풍의 '오월의 노래'와 뽈라레프의 서정성 짙은 노래와는 분위기나 흐름이 상당히 다릅니다.

아마도 '중간 단계의 뭔가가 있을 거다'라고 추측하던 저는 우연찮게 이 의문에 답을 주는 노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모닥불', '방랑자' 등으로 알려져 있는 박인희씨가 1975년에 미셀 뽈라레프의 노래를 '사랑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해서 부른 것입니다.

'뽈라레프-박인희-익명의 편곡자'로 이어지는 한 노래의 변천 과정은 원 가사의 내용, 그리고 작 편곡자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서로 수미상관하면서 노래의 위대한 힘을 국경을 넘어 보여준 것입니다.

다시는 '오월의 노래' 같은 노래가 더 이상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는 다짐과 함께 박인희 버전의 가사처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 마음 한 뜻으로 위로하고 아껴주던" 가슴이 따뜻한 민중들의 세상이 하루 속히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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